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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시

“오...리카사....저택 사용인 모집……?”

오리카사 저택은 모모세네 마을에 있는 거대한 저택의 이름이였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요새처럼 보일 정도로 폐쇄적이며 어둡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거뭇하게 칠이 된 대문이나 저택의 정원을 차지하고 있는 정체 모를 흉상, 간간히 들려오는 고풍스럽지만 음침한 악기 소리까지. 마을 사람들이 그곳을 기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곳이 벰파이어의 저택이라는 소문이었다.

항상 커튼을 치고 있어 햇빛이 들어가지 않는다더라, 들어가는 식재료의 양이 적으며 전부 동물이더라, 그 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사실 사람의 비명을 가리기 위한 것이더라, 그 집 사용인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더라 등 소문을 부풀리는 가십들이 낭자했다. 최근 눈 색깔이 벰파이어가 마시는 피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잘린 모모세는 소문보다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저기, 계세요……?”

구직 종이를 한 손에 팔랑팔랑 든 채 초인종을 누르자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며 자신을 이 집의 집사라고 칭한 노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노 집사는 주인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빨리 걸음을 재촉했고 모모세는 짧은 보폭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저택의 복도는 의외로 훈기가 올라왔으며 따뜻했고 주변에 수명이 몇 세기쯤 되어 보이는 골동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똑똑-

노 집사가 닫힌 문을 부드럽게 두 번 두드리자 곧 들어와-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모모세는 집사의 뒤를 쭈뼛쭈뼛 따르며 최대한 주인이라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일자리와 같은 현실적인 이유라고 대충 마음을 다잡긴 했지만, 마을의 소문이 워낙 흉흉했던지라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얼굴도 무서울 거야, 얼마나 무서우면 그런 소문이 났을까 싶은 생각이 머리를 순간 스쳐 지나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스,스노하라 모모세라고 합니다! 그, 마을에 구인을 내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어릴 때부터 산전수전을……!”

“고개를 들어.”

문을 사이에 두고 들은 목소리와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부드러운 미성. 탁하고 엄중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오히려 묘하게 사람의 주의를 잡아끄는 목소리였다. 자신도 모르게 굽힌 허리를 번쩍 세운 모모세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잘, 잘생겼다…… 자신이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이 무색하게 남자는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은 색이 옅은 은발뿐이었다. 이목구비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수려한 미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앉아 있는데도 키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길고 곧은 손가락을 감싸는 검은 장갑도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름은?”

“스노하라 모,모모세입니다!”

“소문은 듣고 왔을 거라고 믿어. 체력은?”

“네?”

“체력이 좋으냐고.”

그렇다고 대답한 모모세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질문의 의도가 뭐지, 설마 소문이 사실이었어? 아무래도 건강한 사람 피가 더 맛있겠지, 게다가 난 어리기까지 하잖아, 순간 모모세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점점 머리가 멍해지는 와중 남자는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집사에게 눈짓했다.

“그럼 오늘부터 저택에서 지내도록 해. 호칭은 모모 군으로 할게. 그리고 다섯 보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 말 것. 이제 나가봐도 좋아.”

그토록 바래 왔었던 일자리건만 소문은 듣고 왔을 거라고 믿는다는 말, 체력이 좋냐는 질문에 완전히 혼이 나가고 겁에 질린 모모세는 간신히 노 집사의 도움으로 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방에서 빠져나온 후 집사는 앞으로 지내게 될 저택을 소개해 주겠다며 그를 이리저리 이끌었고 그 와중에도 아까 만난 남자가 잘생겼지만, 벰파이어이며 곧 저의 피를 남김없이 마실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모모세는 통 집중하지 못했다.

주방, 응접실, 서재, 마지막으로 정원까지 둘러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모모세는 남자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용관계이니 알 필요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마을에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남자와 직접 대면하고 작은 대화까지 나누었다는 생각에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저기,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조금 전에 만난…….”

“오리카사 유키토. 앞으로 네가 모실 사람이니 알아두는 게 좋겠구나.”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이름도 그 이름의 주인이 벰파이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남자’라고 부르는 저택의 주인에 대해 자신이 사람들보다 앞서 있는 것만 같아 괜히 우쭐해지는 것이었다. 아까 저택을 탐방할 때 배정받은 고용인 숙소로 돌아온 모모세는 간단히 잘 준비를 한 뒤 내일 아침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잠이 들기 전 떠오른 이러저러한 생각들 덕분에 남자의 정체에 관한 생각은 몰아쳐 오는 졸림에 곧 희미해져 갔다.

 

 

***

 

 

다음 날 모모세는 곧장 정원을 가꾸는 일을 맡게 되었다. 정원을 가꾼다-라고 생각하면 화분에 물만 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모세는 난생처음 겪는 정원의 규모에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나뭇가지 치기, 물 주기, 분수대와 조각상 청소 등 정원의 식물뿐만 아니라 시설들의 관리까지 전부 모모세의 담당이었다. 이것들 외에도 꽃은 얼마나 많은지, 평생 볼 꽃들은 다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체력이 좋냐고 물어본 이유가 있었네……. 사실 벰파이어가 아니라 꽃장수인 거 아냐?!’

첫날이라 긴장했는지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일을 빨리 끝낸 모모세는 정원의 조그마한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일은 고도의 체력을 요구하는 것이지 실상 가짓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으므로 재빨리 마치면 쉴 수 있었다. 집사도 일을 설명할 때 남은 자투리 시간은 쉬거나 어제 갔던 방을 제외하고는 저택을 돌아다녀도 된다고 말했다. 고된 육체노동에 피로해진 그는 숙소로 돌아가서 좀 더 자기로 했다. 그렇게 피로한 몸을 이끌고 아침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와중 달리 바쁘게 달려가던 하녀가 모모세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애! 이것 좀 주인님께 갖다 드리렴. 쏟지 않게 주의하고!”

“앗 네, 네!”

다른 심부름이 있다며 쏜살같이 달려간 하녀에 그는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려진 잉크병과 새빨간 음료가 담긴 잔을 응시했다. 마치 피를 연상케 하는 붉음, 그리고 비릿하게 올라오는 냄새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갑작스러운 부탁에 여태까지 졸리던 몸에 힘이 바싹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이라니, 그럼 어제 갔던 방으로 가면 되겠지? 설마 진짜 피? 이로써 모모세의 마음속에서 은발의 미남자가 벰파이어일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붉은 액체의 냄새를 맡자마자 어제 남자와의 첫 조우를 떠올린 모모세는 미적미적 발걸음을 옮겼다.

 

 

***

 

 

둔탁한 소리, 잉크병이 부드러운 러그 위에 나뒹굴었다. 러그가 충격을 막아주지 못했는지 자잘하게 조각난 잉크병 조각들과 피를 연상시키는 검은 잉크가 흩뿌려졌다. 결국 심하게 긴장한 모모세는 잉크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잔을 안 떨어뜨린 게 어디냐고 생각하는 도중 남자가 손목을 감싸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모모세는 보기만 해도 따가운 상처와 갑작스러운 사고에 황급히 몸을 숙이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장갑과 옷소매의 경계선에 살짝 생채기가 생겨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이거 쓰세요. 못 믿으실 수도 있지만 이거 완전 깨끗한 거…….”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잖아!”

가까이 다가오는 모모세의 팔을 소리가 날 만큼 뿌리친 남자는 자신이 낸 소리에 놀랐는지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선 황급히 옷을 내리며 상처를 감싸다가 벌떡 일어나 큰 보폭으로 모모세로부터 멀어졌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행동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남자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자세 그대로 얼어있었다.

“후……, 그러니까 첫날에 분명 다섯 보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

모모세는 자신이 남자의 말을 어겼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남자의 태도에 고개가 숙어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가면 뒤에서도 지금 상황에 대한 당황과 모모세를 향한 것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는 약간의 반감이 느껴졌다. 잠시 후 자조하듯 웃은 남자는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평소보다 수천 배 차가워진 남자의 분위기를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모모세는 그 방에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흐어어어어엉. 모모세는 지금 아침에 쉬느라 앉아 있었던 정원의 벤치에서 조용히 훌쩍이는 중이다. 남자의 축객령 이후, 어떻게 방을 나와서 이곳에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망치듯 방에서 나온 뒤 발이 닿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여기였다. 다리를 모은 채 고개를 숙인 상태로 움츠러든 모모세는 아까의 일을 다시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면서 자신의 빈약한 기억력을 원망하는 중이었다. 물론 계속 반복되는 남자의 그 차가운 태도까지. 떠오르는 잊고 싶은 기억들에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앞에 다가온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톡톡- 어깨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두드림에 모모세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기다렸다는 듯 서늘한 눈매가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괜찮아?”

“으악!!! 누구야!!!”

애는 누구지, 아주 그냥 그 남자를 빼다 박았네. 남자보다는 기장이 짧은 머리카락, 동그란 눈과 빵빵한 볼이 모모세보다 한두 살쯤은 어려 보이는 아이였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그는 방금까지 훌쩍이던 것도 잊어버리고 팔을 모아 감싼 채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러자 그 애는 모모세의 반응에 오히려 자기가 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두드리던 손을 거두며 말했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뿐이야. 그렇게 겁먹을 필요 없어.”

“누가 겁먹었다고 그래! 하나도 안 놀랐어.”

“놀라게 해서 미안.”

“하나도 안 놀랐다니까?! 근데 너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여기서 일하는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아이는 이 말에 잠깐 멈칫하더니 한참 말이 없었다. 곧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입을 뗐다.

“어……, 창문으로?”

누가 봐도 급조한 변명임이 티 나는 말에 아까 전까지 서럽게 훌쩍이던 것은 잊은 듯 모모세는 그게 뭐야-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는 안심이라도 된 것처럼 같이 작게 웃었다.

“너는, 그러니까 도련님이야? 혹시 아빠가 이 집 주인?”

“뭐라고?”

“음……, 이 은발 하며 차가운 눈빛까지! 완전히 닮았어!”

“그런가? 많이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해.”

태연하게 대답한 아이는 속으로 웃음을 참는 듯 눈매를 파들거리더니 흠흠 헛기침을 한 뒤 물었다.

“큼, 그래서 왜 울고 있었어? 혹시 텃세?”

“아냐 아냐, 여기 사람들은 다들 너무 잘해주셔. 헉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이 집 주인이니까…….”

“그 사람이 누군데?”

다정한 목소리 덕분일까, 자신보다 앳된 아이여서일까, 모모세는 오늘 처음 만난 아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이는 듣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기면서 그의 솔직한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약속을 어긴 건 내 잘못이 맞아. 하지만 고의가 아니었단 말이야! 그렇게 차가운 눈빛은 처음 봤어, 흐어엉.”

“응, 그렇구……”

“진짜 고의가 아니었어. 나는 너무 놀라서, 그래서 몸이 먼저 나갔을 뿐이야. 게다가 손수건도 완전 깨끗했어……. 매일 저녁 세탁하고 잔단 말이야…….”

손수건의 세탁 여부와 깨끗함을 계속 강조하는 그를 보면서 계속 입꼬리를 실룩거리던 아이는 모모세의 손수건 타령이 끝난 후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그 사람도 네가 싫어서 뿌리친 건 아닐 거야. 내가 알기로는 벰파이어의 피가 인간에게 그렇게 나쁘다던데. 혹시 그 사람이 장갑을 끼고 있진 않았어?”

“응, 끼고 있었어.”

“아마 만일 상처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그렇게 꽁꽁 싸맸을걸.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말이야.”

아이의 말을 들으니 남자의 사정을 조금 알 것만도 같았다. 저택 안은 따뜻한데도 굳이 장갑을 끼고 있는 것도 그렇고 처음 만났을 때의 말한 접근금지도 만약의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범이었다-라고 생각한다면 전부 그럴싸했다. 이러한 의도를 모르고 자신은 갑자기 변한 남자의 태도에만 너무 의미를 두었던 것이 아닐까. 모모세는 그 남자에게 살짝 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벰파이어의 피 같은 얘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그냥,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얘기야.”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진짜 이 집 아들이야? 완전 축소판인데?!”

“노코멘트 할게.”

반복되는 질문에도 눈에 웃음기를 지우지 않던 아이는 품에서 시계를 꺼내더니 시간을 확인하고선 쭈그려있던 몸을 일으킨 다음 무릎을 탈탈 털었다.

”다음에 만날 땐 유키라고 불러, 모모.“

발걸음이 빨라 금세 사라진 유키를 응시하며 모모는 또래 친구가 생긴 기분에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벤치에 앉아 아까 전의 대화를 다시 떠올리며 웃던 모모는 마지막 유키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름을 가르쳐 줬던가……?‘

 

 

***

 

 

“자, 이거 받아 유키. 넌 저택을 나간 적이 없어서 모르지? 내일은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날이래. 근데 이 사탕이 있으면 죽은 자로부터 안전하다 이 말씀!”

“후후, 고마워.”

정원에서의 만남 이후로 둘은 저택 안에서 자주 만났다. 일반적으로 모모가 혼자 있을 때 유키가 홀연히 나타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식이었지만 모모는 마냥 좋았다. 비밀스러운 만남 같은 느낌, 저번에 위로받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만날 때마다 항상 유키에게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정원의 꽃으로 엮은 반지일 때도 있었고 주방에서 얻은 주전부리, 예쁜 낙엽으로 만든 책갈피가 주였지만 모모는 선물을 고를 때마다 유키의 반응을 생각하며 정성껏 골랐다.

저번에 준 과자는 너무 달았나 봐, 반지보다는 책갈피를 더 좋아하던데. 하지만 곧 이러한 생각은 깨지고 말았다. 최대한 가기 싫다는 의사를 표현했지만, 주인님, 그 남자의 방에 심부름하러 가게 되었을 때 보고 말았다. 남자의 책상 위 조그마한 함에 자신이 여태까지 준 모든 선물이 고이 모셔져 있는 것을. 이를 발견한 뒤 모모는 충격을 받은 채로 방에서 빠져나왔다.

’왜……. 그렇게 기쁘게 받아 놓고 저게 왜 다 저기 있는 거야?‘

’아냐, 분명 잃어버린 거겠지. 그 남자는 그걸 주운 거고. 아니면 맡겨뒀을 수도 있잖아…….‘

필사적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생각하던 그는 결국 유키가 자신이 준 선물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근본적인 사실로 되돌아왔다.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해봐도 서운함이 줄어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선물을 버렸다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남자에게 적선했다든가 하는 내용이 맴돌았다. 기분이 급속도로 울적해진 모모는 유키를 만났을 때 직접 물어보기로 했지만 이제까지 유키가 자신을 찾아오기만 했지 이를 제외하면 유키와 만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그날 자정에 가까운 늦은 시각, 어김없이 자기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모모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사탕을 주면서 살가웠던 모모의 태도와 정반대인 행동에 유키는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

“왜 그래 모모?”

“그러니까…….”

“응, 말해봐.”

“그……, 선물 말이야. 내가 여태까지 준…….”

“사탕이랑 반지랑 책갈피?”

“왜……, 왜 내가 준 게 흑, 그 남자 책상에 있는 거야? 혹시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런 거였으면 진작에 흡, 얘기하지, 그랬어…….”

말을 하는 도중 곱씹어보며 서러웠는지 모모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유키는 당황했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빠르게 대답했다.

“아니야, 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는걸?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받았을 때 바로 말했을 거야.”

“하지만……, 난 봤단 말이야. 그리고 그 방은 그 남자 허락이 없으면 못 들어가. 유키야말로 나한테 숨기는 게 있는 거 아냐?! 솔직하게 말해줘도 괜찮아…….”

그게, 그게 아니라. 유키는 답지 않게 허둥대며 모모를 달래기 위해 애를 썼다. 매사 차분한 평소의 모습과 달리 빨라진 말투와 과장된 몸짓이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 모모를 달래던 유키는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겠다 싶어 모모를 붙들고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그를 간신히 달랜 뒤 유키는 어둠에 싸인 복도 너머로 뛰어갔다. 금방 사라져버린 모습에 모모는 이 늦은 밤에 남자의 방에 침입해 물건을 다시 가져오기라도 할 셈인가라는 의문이 피어올랐지만, 곧 고개를 붕붕 저으며 유키가 가져오는 어떤 것이라도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유키가 말했던 대로 3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뚜벅- 돌연히 유키가 사라진 방향 쪽에서 가벼운 소리가 아닌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먼저 뛰어간 유키의 발소리와는 달랐기 때문에 모모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용인이라면 목이 말라서 주방에 물을 가지러 갈려던 참이라고 변명할 준비까지 마쳤다. 어둠이 삼켜버린 듯 처음에는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의 주인을 달빛이 조명처럼 비추자 밝은색의 머리카락부터 순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쭉 뻗은 다리, 손목이 도드라지는 장갑을 낀 손, 눈 밑의 눈물점까지. 달빛에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맨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모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평소의 남자는 얼굴의 3분의 2를 가리는 가면 때문에 이목구비를 정확히 추정하기 힘들었는데 가면을 벗고 보니 유키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똑같았다. 눈물점의 위치까지 정확한 것을 보아 더 이상의 변명은 불가능해 보였다.

“아니 저, 그, 그러니까, 당신…….”

“이제 유키라고 불러주지 않는 거야? 모모.”

순간 모모의 사고가 정지했다. 유키에게 준 선물을 가지고 있는 남자. 유키와 똑 닮은 남자. 그리고 그 남자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웃음을 참던 유키. 그러니까 그게 그거고 이게 이거라고? 아, 설마……. 세상의 모든 혼란이 담긴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 서린 웃음기에 확신하고 말았다. 어쩐지 너무 닮았다더니……, 그럼 나는 본인을 있지도 않은 본인 아들로 생각한 거야?! 모모는 부끄러워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

 

 

“후후, 그럴 때도 있었지.”

“아~ 정말 유키!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때는 정말 당황하고 놀랐다고!”

“하지만 그 정도까지 모모가 날 못 알아볼 줄은 몰랐는걸.”

“하지만 그때는 정말 유키가 이 집 아들인 줄 알았단 말이야!”

정체가 밝혀진 할로윈 밤이 지난 5년, 유키는 여전히 그때 일을 우려먹고 있고 모모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항변하고 있다.

“그거 피 맞냐고? 당연히 피지.”

유키와 ‘그 남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안 다음 날, 모모는 곧장 유키에게 벰파이어가 맞냐고 물었고 유키는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소문이 진짜였구나-라고 감탄하는 모모에게 유키는 세간의 소문은 믿을 게 되지 못한다고 충고해주었다.

“특히 못생긴 추남이라는 소문 말이야. 그런 걸 믿어, 모모?”

“그렇네……, 유키는 초절정 잘생긴 훈남이니까…….”

이렇게 그들은 종종 농담을 던지며 웃을 것이고 사소한 일로 다투거나 싸우면서 지낼 것이다. 인간인 모모는 유키보다 더 빠르게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모모가 벰파이어가 되는 날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 모모는 벰파이어의 저택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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