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리쉬 세븐 할로윈 합작

저주
- 비
나나세 씨가 사라졌다.
숙소를 나간 어젯밤 이후, 해가 뜰 때까지 나나세 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중에도 계속해서 래빗챗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이 밝고 오프인 멤버들과 나가 나나세 씨를 찾아보아지만 찾지 못했다. 어딘가에 쓰러져있기라도 한 거라면…. 불안이 생각을 잠식하는 건 금방이었다. 곧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하고 휴대전화로 기지국 위치 추적을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 결국 기도를 올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되고 쿠죠 씨에게 연락을 했다. 이번만큼은 어떤 소리를 듣더라도 감내할 각오를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으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을 때의 데시벨은 세상에서 가장 작았던 것 같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동요가 느껴지고 통화가 종료되었다. 그 후 "어젯밤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해줘"라는 래빗챗이 도착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를 보고, 나는 제로를 떠올렸다. 그리고 쿠죠 타카마사. 그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나나세 씨를 대신할 사람 따위는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어제 마지막 나나세 리쿠를 보았다.
이하는 제가 쿠죠 씨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그날 나나세 씨가 팬레터를 읽는데 안에 동봉된 것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은 걸러내지만, 그 외에는 대부분 받는 편이니까요.부피가 작아서 무엇인지 살짝 들여다 보았더니 씨앗이었습니다.편지에는 "리쿠 군의 탄생화가 해바라기여서 해바라기 씨앗을 넣어봤어요. 예쁘게 자라면 좋겠다!"라고 적혀있었고, 그 내용을 보자 눈에 띄게 화색이 되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환한 미소로 이오리, 이거 심어도 돼? 라고 물으면서요. 마른 흙은 좋지 않을 테니 흙을 파내는 것만 돕겠다고 하고, 그 뒤는 나나세 씨가 하고 싶다고 해 그러기로 하였습니다. 기숙사 뒤쪽에는 작지만 심을만한 공간이 있었고, 나나세 씨와 같이 물뿌리개와 삽을 챙겨 뒷쪽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흙을 파내고, 나나세 씨가 씨앗을 넣고 파냈던 흙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뿌리고 잠시 바라보다 다시 기숙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때까지는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날은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별일 없이 각자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제가 잠에 들고 나서 나나세 씨가 제 방에 찾아왔습니다. 나나세 씨의 기침소리에 깨 찾아간 적은 있었어도 먼저 오신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제멋대로에 어리광쟁이인 사람이지만 남이 자신을 걱정하거나 신경쓰는 걸 꺼려했으니까요. 무슨 일이냐고 묻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셔서 차라도 끓여드릴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고개를 저으며 그런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묻자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더욱 나나세 씨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니까요. 새벽 두시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할 시간입니다. 게다가 평소에는 저보다 둔한 그 사람에게만 들리는 소리라니…. 그 때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나세 씨에겐 저희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인다는 사실이요. 히마쨩이 집에 데려다달래. 길을 모르겠대. 나나세 씨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라서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때는 어린 말투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내키지 않았지만 사뭇 진지한 얼굴에 그만 그러면 같이 가자고 말을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듯 현관을 나서는 나나세 씨를 본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빠르게 따라나갔지만 그 짧은 순간 나나세 씨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는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지만 장난이라도 치는 거라고 애써 부정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나세 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저는 그날 밤 거리에서 나나세 씨를 찾다가 들어왔습니다.
현재는 약 26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정말 저희가 보지 못하는 존재가 나나세 씨를 부른 걸까요? 혹시나 그런 거라면, 왜 갑자기 나나세 씨를 찾는 걸까요. 이런 일이 처음일까요?
쿠죠 텐은 이즈미 이오리의 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떠오른 날이 있었다. 어렸을 때, 아직 나나세이던 시절 리쿠와의 일이.
리쿠와 뒷마당에 씨앗을 심었던 적이 있었어.
리쿠가 어디선가 가져온 씨앗이었다.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했지만 상표가 붙은 봉투가 아니라 씨앗 두 개만을 달랑 손 위에 들고와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었다. 리쿠가 주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받아오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자주 귀엽다거나, 착하다며 덤이나 선물을 받아왔고, 리쿠는 기쁜듯 웃으며 자랑했다. 그래서 누구에게 받았냐며 물었을 때 모르겠다고 해도 그냥 넘어갔던 것이다. 그날은 그게 마침 씨앗이었다.
그 씨앗은 대단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몇백 년을 사는 나무도, 달콤한 과실이 열리는 나무도 아니다. 그저 관상용으로 심는 것들. 그래, 나팔꽃이나 해바라기 같은 것. 대부분은 얼마 크지 못하고 죽기 일쑤다. 아이들이 식물을 키운다는 건 그렇다. 특별히 비옥한 땅도, 전문적으로 관리를 해주는 것도 아니다. 물은 열심히 주지만 오히려 그것이 식물을 죽일 때도 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식물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알고 있던 게 그것뿐이어서다.
특기는 아니었지만 리쿠는 무언가 키우는 걸 좋아했다.
생명이 자라는 걸 보는 게 기뻤던 걸까?
집에는 모종삽이 있었다. 삽과 물뿌리개를 가져올 테니 잠시 기다리라 한 뒤 방으로 올라가 두 개의 삽을 챙기고 물뿌리개도 찾아 물을 채워 내려간다. 뒷마당으로 향하면 늘 씨앗을 심는 텃밭이 조그맣게 있다. 그때는 해바라기가 있었다. 여름이라 꽃이 피어있었고 어김없이 해를 향해있다. 리쿠는 해바라기를 좋아했다. 우리의 탄생화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애착이 생긴 것 같았다. 다른 것들은 크게 자라나지 않았는데 이 해바라기만은 잘 자랐다. 리쿠의 애정을 받아서일까? 터무니없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해바라기는 원래 어느 곳에서든 잘 자란다고 한다.
식물도감에서 읽은 것 같았다.
리쿠는 동물과 있는 것은 어려웠으니 무언가의 성장과 삶을 보는데에 식물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무는 오래 걸리며, 한해살이 풀은 슬펐지만 그래도 해바라기를 좋아했다. 식물을 키우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인지 읽는 책도 그런 방향을 향하기 시작했다. 리쿠는 늘 그랬다. 행동으로 쉽게 드러나니까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며칠째 식물 도감이나 나무가 주로 나오는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이내 리쿠, 텃밭 가꾸는 거 재밌어? 하고 물었었다. 그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다. 어떻게 알았어? 텐 형 대단해…! 라고.
리쿠가 원하는 것은 들어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는 게 더 많았고, 그래서 늘 "안 돼"를 많이 말하게 되는 게 슬펐다. 하지만 가장 슬픈 건 리쿠일 거란 사실 또한 안다. 그래도 흙이 묻는 것도 걱정스러웠기에 삽으로 흙을 파내는 것까지도 도맡아 했다. 리쿠는 가져온 씨앗을 구멍에 넣고 흙을 덮는다. 같이 그 위를 토닥이고는 물을 뿌렸다. 물뿌리개에 담긴 물이 떨어지며 땅을 적신다. 그렇게 땅에 스며드는 물을 지켜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삽과 물뿌리개를 화장실 앞에 두고 리쿠와 함께 손을 씻었다.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모래를 보며 수도꼭지를 닫고 수건을 꺼냈다. 그때 텐 형, 누가 리쿠를 부르고 있어. 하고 리쿠가 수건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리쿠는 종종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기도 했고 몇 번인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리쿠에게 말을 거는 혼 중에 해칠 의도를 가진 이는 아직 없었기에 보이거나 들리진 않지만 리쿠의 말을 들어주었다. 마당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뒤로 대화에 집중하는 건지 한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리쿠한테 같이 가재. 어딜 가고 싶은 걸까? 그 말을 했다. 나는 배웅 정도는 해줄 수 있지만 그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리쿠는 그 뒤로도 한참을 집중해 듣는 것 같았다.
내일 봐!
얼마 뒤 누군가에게 인사했다. 그 친구에게 한 거야? 그렇게 묻자 '내일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답 없이 리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창 너머의 텃밭을 바라보았다. 아까 심은 씨앗은 당연하지만 흙에 덮인 채였다.
다음날 아침에도 리쿠는 어김없이 뒷마당으로 향했다. 요즘은 텃밭에 가는 게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씨앗은 몇 번 심었지만 이렇게까지 흥미를 가진 적은 없었는데 뭔가 마음에 든 걸까? 리쿠는 몰두한 일이 생겼을 때는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요즘이 다시 그 시기였다. 눈을 뜨자 옆에 리쿠가 없는 것을 느끼고 몸을 돌려 방을 둘러보았지만 리쿠는 보이지 않았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종종 장난을 치느라 숨어있는 일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마당에 갔겠거니 싶었다. 왠지 그 씨앗을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았으니까…. 리쿠를 보러 가기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방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움직이던 것을 멈추니 방문이 열렸다. 텐 형! 마당으로 나와 봐! 그렇게 말하는 리쿠는 잠옷 차림 그대로였다. 그리고 잠옷 차림으로 마당으로 향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신발장에 뒤집혀 아무렇게나 있는 슬리퍼를 급하게 신었다. 정리가 안 되어있는 걸 보아 아마도 리쿠가 들떠 들어온 거겠지. 텃밭에 해바라기가 폈어! 해바라기는 원래 있었잖아? 아니! 새로운 게 자랐어!
그 말에 싹이 난 건가? 하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하루만에 식물이 자라는 걸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사실 하루만에 싹이 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리쿠의 말을 쉽게 의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해바라기가 두그루 자라있었다.
이건 텐 형이고, 이건 늦게 자랐으니까 리쿠네!
그리고 리쿠가 해바라기에 다가가 끌어안듯 몸을 붙였다. 분명 리쿠가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왠지 그 해바라기가 오싹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또다시 리쿠가 누군가와 모르는 이야기를 할까봐 두려웠지만 다행히도 그러지 않았다. 평화로운 주말 오후를 보내고 해가 져갈 무렵, 오후의 안도는 깨지고 말았다. 리쿠가 다시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응. 그래? 같은 대답들 뿐이었지만 꽤 집중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던 도중 리쿠가 도와줄까? 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에 읽던 책에서 눈을 떼고 리쿠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리쿠가 이렇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적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내가 리쿠를 타이르고, 리쿠가 말을 전하면 보통 서로의 길을 걷고 끝맺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왠지 불안해졌다. 어제 리쿠한테 같이 가자고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리쿠를 붙잡았다.
어딘가 갈 거라면 같이 가자.
그렇게 말하자 리쿠는 놀란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선 늘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했었으니 그렇겠지. 하지만 오늘은 리쿠를 홀로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디에 가는 거야? 뭐라고 해? 그리 묻자 리쿠가 답했다. 리쿠를 부르고 있어. 여기엔 없는데,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아. 어딘데? 집 앞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길가 쪽.
그날 우리는 한밤 중 해바라기를 보러 갔다. 정확히는 그 아이를 만나러 간 거지만…. 나는 볼 수 없었지만 리쿠에게는 확연하게 존재하는 것이니까. 리쿠는 계속해서 소리를 찾아가는 듯 했다. 항상 리쿠가 나를 따라왔는데 내가 리쿠를 따라가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 어렸던 우리에게 해바라기는 너무나 큰 꽃이었다. 해바라기 밭 사이로 들어가자 밖에서 우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길가가 보이지 않게 되자 리쿠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두려웠던 걸까. 리쿠와 이 세계에 둘만 남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계속해서 리쿠를 쫓아가던 중 어느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어느 자리에 멈춰서 웃었다. 기다리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리쿠의 미소를 보고 불안해진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살랑이던 여름밤 바람이 갑자기 멈추었다. 우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바람이 멈추며 흔들리던 해바라기의 잎사귀들이 부딪히던 소리도 멈추고, 풀벌레들의 노랫소리도 동시에 멈췄다. 고요한 적막이 찾아오자 주위를 살폈다. 그 때였다. 잠시 고개를 돌린 사이, 옆에 있던 리쿠가 사라졌다. 분명 계속 손을 잡고 있었는데도….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그 상황에서 리쿠를 찾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내 해바라기 밭을 돌아다니며 리쿠의 이름을 연신 불렀다. 그때는 다시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가 들려와 마치 내 목소리가 묻히는 것 같았다. 숨을 몰아쉬느라 잠시 말을 못 한 그 순간, 내게도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아마 리쿠가 말한 그 아이겠지. 그 애는 내게 말을 걸었다. 네가 리쿠의 쌍둥이구나? 하고.
"…넌 누구야?"
"몰라? 리쿠가 이야기 안했어?"
"…내겐 들리지 않으니까…."
"넌 리쿠와 쌍둥이지만 다른 점이 많구나."
"리쿠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 돌려줘."
"데려가지 않았어. 네게 보이지 않는 것 뿐이야."
"…안돼, 그 애에겐 내가 있어야…"
"네게 리쿠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
"좋아, 그럼 일단은 되돌려줄게. 리쿠와 같이 가고 싶었는데, 널 보니까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일단이라니?"
"리쿠는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될 거야. 긍정적이고, 상냥하고, 밝은 아이로 자라겠지. 그건 네 덕도 있을 거야."
"…그건…."
"하지만 리쿠가 언젠가, 해바라기 씨앗을 심게 되면 다시 리쿠를 데려갈 거야. 그러지 않도록 조심해."
두 번은 아쉬우니까 세 번으로 해줄게. 오늘이 첫 번째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건 마치 물레방아의 바늘에 찔리면 영원히 잠들게 될 거라는 말레피센트의 저주 같았다.
그리고 옆을 보자 잠든 리쿠가 있었다. 나는 리쿠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고, 함께 심은 해바라기는 시들어 죽어버렸다.
텐은 이오리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믿으라고요?"
"리쿠가 보는 건 가짜가 아니야."
"그런 건 저도…."
"…아무튼 우리가 할 건 정해져 있어."
"하지만 어떻게 찾아가야…"
"지금 내게 또 들리기 시작했어."
텐, 또 리쿠를 잃었구나.
텐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좇았다.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이오리의 모습이, 마치 어렸을 때 자신과 리쿠 같았다. 그러다 어떤 길가에 펴있는 해바라기들을 마주했다. 해바라기가 져가는 시기여서 거의 다 지고 있었는데, 한 송이만 활짝 피어있었다. 텐은 그 앞으로 다가갔다.
"…리쿠를 돌려줘."
그러자 뒤에서 리쿠를 부르는 이오리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텐은 동시에 이제 다음이 마지막이네. 다음엔 돌려주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리쿠를 데리고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 뒤에 심었다던 해바라기는 그날 본 것처럼 다 자랐지만 시들어 죽어버린 모습이었다. 이제 리쿠를 지켜야 할 사람은 두 명이 되었다. 지킬 수 있지만,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더 힘든 일이 되는 걸까.
불안해졌다. 앞으로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련이라면 앞으로 한 번만 더, 겠지만, 저주는 한 번밖에 기회가 남지 않은 것이었다. 이 영원한 저주 속에서 셋은 살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