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리쉬 세븐 할로윈 합작

밤손님
- 주르광신도
이스미 하루카, 이누마루 토우마, 나츠메 미나미, 미도 토라오
츠쿠모 료, 우츠기 시로
-사망 소재 주의
-5부 이후, 6부 이전
-7주년 기념 스토리를 비롯한 각종 스토리 발 네타 포함, 공식 설정을 기반으로 하여 일부 설정은 날조했습니다.
미나미. 죽은 사람이 나오는 꿈은 길몽이야?
죽은 사람이요? ……글쎄요. 어느 쪽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그 꿈의 내용이 중요하거든요.
어떻게 중요한데?
그분이 당신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자 했는지, 그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스미 씨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좋은 꿈이 될 수도,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어요.
…….
이스미 씨?
그 사람이 나한테, 살려달라고 하는 꿈은?
그렇게 기상천외한 인간이었는데 장례식은 이렇게나 형식적이고 평범하다. 막상 가족은 얼굴도 비추지 않아 상주는 시로가 맡게 되었다.
“여러분은 안쪽에서 좀 주무셔도 괜찮아요.”
“잠이 안 와.”
하루카의 말대로 아무도 졸린 기색이 아니었다.
국화꽃 사이에 파묻힌 츠쿠모 료의 영정은 그 자체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절대 곱게는 안 죽을 것 같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교통사고라는 사인으로.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니냐고 하고 싶었지만 경찰도 그리 한가하지 않을 테다.
정말로 죽은 거겠지. 귀신보다 무섭던 그 인간이, 고작 사람이 모는 자동차에 치여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묵묵히 앉아있던 토우마는 답답함에 넥타이를 끌어내리고 단추를 하나 풀었다.
거래를 제안하는 악마처럼 나타나, 폭풍처럼 연예계에 검은 수를 펼치고, 뒤에서는 지겹게도 우리를 괴롭혀왔다. 매사 기분을 맞춰줘야 했고 혹시 거슬렀다가 화라도 입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던 사람. 빈껍데기 안쪽을 의미 있는 것들로 채우고 싶어 했던 사람. 헤어짐도 최악이었지만, 두고두고 마음에 밟혔던 사람. 그 사람이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바로 받아들이기엔 힘든 사실이었다.
시간이 늦어 슬슬 조문객이 줄어드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한 시로는 멤버들에게 눈을 돌렸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말씀드리는 것을 깜박했던 전언이 있습니다.”
대뜸 튀어나오는 그 말에 네 사람의 눈이 어리둥절하게 한 곳을 향했다. 진작 전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후회되었지만, 늦든 빠르든. 이 말이 주는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이스미 씨의 학원제 날, 제가 료 군을 만나 신사를 오른 일이 있었죠.”
“아, 응…….”
“그 때 료 군에게, 여러분에게 전할 말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꺼낸 얘기인데도 까먹게 되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계속하세요.”
“지켜보고 있다, 고…….”
“…….”
“전해 달라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료 군은 지금도 여러분을 보고 있을 거예요. 충격이시겠지만, 부디 힘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주세요. 그도 그걸 바라고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시로는 휴게실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드라마 BLAST는 절찬리에 방영 중이었다. 완결을 앞두고 결말을 추측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쏟아졌으며, 매 화 공개될 때마다 관련 기사가 속출했다. 진즉 사장직을 내려온 료의 죽음으로 커리어에 지장이 가는 부분은 없었다. 츠쿠모 사람들에게도 놀랍지만 슬프지는 않은 일로 치부됐다.
일이 벌어진 것은 그의 기일로부터 34일이 지난 날이었다.
음악 방송 녹화를 위해 방송국을 찾은 토라오는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술렁이는 분위기와 마주했다. 스태프가 열심히 설명을 하는 것을 시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그 뒤에서 멤버들이 당혹스럽게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음향 장치가 죄다 먹통이 돼서, 녹화를 미뤄야 될 것 같대.”
“뭐? 원인이 뭔데?”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전원도 멀쩡하게 들어와 있는데, 이상하게 소리가 안 나요.”
오자마자 이런 말씀밖에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스태프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아직 짐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불행인 점은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다면 헛걸음조차 안 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일단 대기할 수는 없는 겁니까?”
“그렇게 해주셔도 괜찮긴 한데, 언제 복구될 거란 보장이 없어서요.”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던 시로도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판단했는지 체념하는 소리를 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래다 드릴게요.” 불만을 감추지 않던 하루카도 그쯤 되니 얌전해졌다.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흐르고 시로는 하루카와 미나미를 대동해서, 토우마와 토라오는 각자 돌아가기로 했다.
“근데 어떻게 하면 전원도 들어왔는데 작동을 안 할 수가 있어?”
돌아가는 길에 하루카가 앞좌석에 몸을 내밀고 시로와 미나미에게 물었다.
“글쎄요. 기기 문제겠거니 싶지만… 원인보다는, 해결이 안 될 경우가 걱정이네요. 교체를 하던 해서 해결하겠지만요.”
“그러게요. 당장 저희 뒤로도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을 텐데.”
말을 마친 미나미가 문득 후후, 웃었다.
“그나저나, 이유 없이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는 건 대표적인 심령 현상 중 하나입니다만……. 과연, 어떨까요.”
“뭐…! 무서운 소리 하지 마, 미나미!”
하루카가 우는 소리를 해도 미나미는 농담이라며 정정해주지 않았다. 직접 본 것도 아니니 괜찮냐는 말에 그는 겨우 진정했다. 심령 현상이든, 기기 문제든, 정확한 원인이 뭐가 됐던간에. 시로의 말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했으므로, 내일부터는 이런 해프닝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소소하게 나누고 그들은 각자 흩어졌다.
그 날 저녁, 토우마는 리쿠에게서 기묘한 메시지를 받았다.
[토우마 씨! 저 오늘 방송국에서 귀신 봤어요.]
[스탠바이 하러 가는데, 복도 반대쪽에서 누가 저한테 ‘나나세 리쿠 씨! 잠깐 이쪽으로 와주세요.’ 하고 말을 거는 거예요.]
[그래서 갔더니 아무것도 없길래 뒤돌아보니까 막다른 길인 거 있죠? 분명 방금까지 멀쩡하게 왔는데!]
[그 때 아까 들렸던 목소리가 다시 ‘나나세 리쿠 씨! 이쪽이에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뒤돌아봤더니… 누가 봐도 사람이 아닌 게 있었어요!]
[그래서 큰일났다, 귀신이구나! 하고 있었더니 뒤따라온 이오리가 붙잡고 나가줬어요.]
[얌마, 이런 얘기 이 시간에 갑자기 보내면 무섭거든?]
밤 열한 시라고? 이 녀석은 미성년자인데 잠 안 자나……. 투덜대면서도 꼬박꼬박 읽고 답장하던 토우마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그래서 일은 무사히 했냐? 우리는 오늘 음향 기기가 죄다 먹통이 돼서 연기됐어.]
[음향 기기가 먹통이요?]
[그거 귀신 때문 아니에요?]
[귀신? 상관있나 그거랑?]
[그럼요. 원래 전자기기는 귀신이 옆에 있으면 오작동을 잘 일으켜요. 귀신 자체가 전기적 속성을 띠고 있어서 그래요.]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다. 토우마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 팔을 문질렀다. 그나저나 기계 고장보다는 귀신 소동이 기분은 찝찝해도 손해는 없을 테니 낫다고 볼 수 있는 건가.
그로부터 이틀 후, 토우마를 이른 아침 깨운 것은 몇 번이나 시끄럽게 울리는 통화 수신음이었다.
발신인은 시로였다.
[이누마루 씨,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혹시 오늘 인터뷰하러 가기 전에 조금 일찍 모여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우츠기 씨……. 네. 가능은 한데… 왜요?”
[이스미 씨가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아서… 꼭 저희가 모여야 한다고 하셔요. 왠지 상태가 안 좋아 보이셨어요.]
하루가?
사무소에 도착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하루카가 꺼낸 첫 마디는 가히 당황스러웠다.
“나 때문이야.”
그 말에 미나미를 제외한 모두가 의아해하며 눈치를 봤다.
“그저께 음향 기기에 문제가 생긴 거, 나 때문이야. …요츠바 녀석한테 들었어. 그 날 같은 방송국에서 나나세가 귀신을 봤고, 어제는 대기실 문이 제멋대로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대.”
“그게 왜 너 때문이라는 건데?”
“그 귀신, 료 상이야…….”
“……뭐?”
“료 상이 며칠 전에 내 꿈에 나왔어. 나와서,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고 했어… 살려달라고……. 시키는 대로 해달라고 부탁해서, 난, 꿈이니까 반쯤 정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했는데.”
횡설수설 쏟아지는 말을 정리하듯 미나미가 뒤를 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 이상 현상이 나타나서, 전화로 제게 상담하셨어요. 죽은 사람이 나오는 꿈은 길몽이냐고.”
“꿈에서 뭘 하셨는데요?”
시로의 물음에 하루카가 기억을 더듬었다. 동물의 털 같은 거랑, 이것저것 구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내가, 꿈 속에서 어느 숲에 찾아가서 동물 털을 뽑았어. 무슨 동물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어쨌든, 구해서 가져다 줬거든. 그리고 어제 또 꿈을 꾼 거야…….
하루카. 고마워, 내 부탁을 들어줘서… 피하지 말고 반겨줘. 내가 찾아왔잖아. 네가 꿈에 나를 불러서, 기회를 줬지? 그러니 반갑게 맞아줄 수 있겠지?
“……그렇게 말했어.”
“이건 강령술 아닌가요?”
여기부터는 미나미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므로, 그의 표정이 약간 나빠졌다.
“피곤해서 악몽을 꾼 거 아니야?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인데, 그게 현실이랑 뭔 상관이야.”
“하지만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잖아, 이 연속적인 사건은!”
“그래서 네가 책임을 지겠다는 거야? 모든 일에?”
토라오의 엄격한 말에 하루카가 입을 다물었다.
“확인되지도 않은 걸 네 탓으로 돌리지 마. 그러지 않아도 남의 책임을 강제로 떠맡게 될 일은 살면서 몇 번이고 생겨.”
“뭐, 하루가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일단은 상황을 보는 수밖에 없어.”
토우마가 하루카를 진정시키는 말을 꺼내고, 하루카는 애써 패닉이 되어 있던 정신을 가다듬기로 했다. 그에게는 어떤 영력도 없었고 토라오의 말마따나 전부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꿈 속이었으므로… 그게 정말 료였을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태어난, 그 안의 츠쿠모 료일지도 몰랐다.
상황을 보자는 토우마의 말이 무색하게 그 뒤로도 비과학적인 일은 몇 번이고 이어졌다. 방송국이 몇 번 마비되고, 방송국 심령사건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도심 한복판의 교통 신호가 이상을 일으켰다. 멀쩡히 서 있던 표지판이 떨어지고 건물 입구가 이유 없이 열리지 않았다. SNS의 트렌드에는 오늘의 심령 현상을 보고하는 해시 태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올라오지도 않았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생긴 태그일 뿐이다보니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온갖 심령 현상이 전부 보고되었다. 그 중에서 하루카가 온전히 자신의 탓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사실이 한편으로는 하루카를 안심시켜 주었다.
하루카는 여전히 이 일의 원흉이 료라고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점은 생전의 츠쿠모 료와 너무나도 닮아 있어서, 역시 제 꿈에 찾아온 것은 료 상이 맞고, 기분 탓 같은 게 아니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생전에 무슨 미련이 남은 걸까요.”
오는 길에 사고로 인해 도로가 마비되어 늦는다는 프로듀서의 연락을 받고 돌아온 시로가 입을 열었다.
“이스미 씨. 아직 꿈에 료 군이 나오나요?”
“잘 모르겠어.”
“모른다면 어떤…?”
“나왔던 것 같긴 한데, 일어나면 전혀 기억 안 나니까. 꿈인지 현실인지도 모르겠고…”
뭐, 꿈이란 게 보통 그렇지. 대수롭잖게 긍정한 토라오가 시로에게 물었다. 우츠기 씨는 짚이는 데 없어? 지인이었잖아. 그러자 시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건 사실입니다만… 전혀 막역한 사이가 아니었어서요. 그 말에 학원제에서 들었던 충격적인 통화 내용을 떠올리고 다들 조용히 납득한다.
“저보다는 여러분이 더 잘 알지 않을까요? 료 군에 대해서.”
“아니, 저희도 친밀한 관계는 절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여러분을 한 데 모은 건 료 군이에요. 제게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는걸요.”
분명 여러분과 하지 못한 무언가가 마음에 밟혀서 지상을 떠돌고 있는 걸 거예요.
시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래빗챗 차단했다고 밤에 찾아오질 않나, 얼굴에 샴페인을 붓질 않나… 하고 싶은 분풀이는 다 하고 하직한 양반에게 무슨 삶의 미련이 있는 걸까? 그라는 인간이 가진 살아감에 대한 욕망은 우리가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장례고 화장이고 마무리 된지 오래였으니까.
멤버들이 아무런 말도 없이 입을 다물자, 짧게 생각하던 시로는 손으로 딱, 소리를 내며 제안을 던졌다.
“그럼 저희, 돌아보는 시간을 갖죠!”
“돌아보다뇨?”
“제가 아직 해외에 있었을 때, 료 군과 함께 일하던 여러분의 행적을요. 물론 이 일에 투입되기 전 사전조사는 충분히 했습니다만, 영상물을 제대로 챙겨보지는 못 했거든요. 그러니 여러분께서 여유가 될 때 쭉 돌아보며 그 무렵의 이야기를 해주시면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어떠신가요?”
그 제안은 나쁘지 않게 들렸다.
프로듀서가 트래픽 이슈를 뚫고 한 시간 뒤에 겨우 도착하는 바람에 시작이 지연되긴 했지만, 회의 자체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일정이 끝나고 나니 저녁 시간대였다. 돌아가려는 멤버들을 붙잡고 토우마가 말했다.
“조금, 생각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저녁이라도 다같이 먹을래?”
토우마와 토라오가 각자 차를 타고 온 바람에 가는 길에는 나눠 탈 수밖에 없었다. 무난하고 적당히 조용한 식당을 찾은 네 사람은,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고 왠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 모든 소동의 원흉이 료 상이라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거라고 생각해? 료 상이 찾아간 게 왜 하필 이스미 씨였을까요? 하루의 마음이 가장 말랑해서 그런 거 아니야? 일리 있는 추론이네. ……. 나 사실, 좀 서운하기도 해. 브라호와 때, 객석에 료 상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팬 서비스 해줬거든. 료 상도 후련한 얼굴이길래, 다행이다. 료 상이 내 팬 서비스를 받아줬어. 했는데……. 그걸론 안 됐던 걸까? 료 상은, 무엇에 갈증 나 있는 거야?
돌아온 날 밤, 하루카는 오랜만에 료가 나오는 꿈을 꿨다. 정확히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분위기로부터 어렴풋이 그가 이전에 꿨던 꿈과 같은 온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료 상.”
눈앞의 존재는 흐릿했다. 정말 며칠 전 꿈에 찾아와 다시 한 번 자신을 불러 달라 했던 그 료가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하루카는 깨달았다. 그 날, 이 모든 소동이 시작된 날을 앞둔 밤… 그는 유독 료를 만나고 싶었다. 얼굴이 보고 싶다거나, 어떻게든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는 진짜 마음을 듣고 싶었다. 축하 파티를 열어 우리를 불러놓고 화풀이만 했던 날, 실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 섬뜩한 말로 우리를 깎아내릴 적에 꺼낸 말은 모두 진심이었는지. 그렇다면 왜 누군가로부터 버려져 갈라진 마음의 틈새에 굳이 다가가 파고 들어왔는지. 단 한 번도 우리의 만남을 운명이라 생각한 적은 없는지. 무대 위에서 어떠한 말도 없이 눈빛만 주고받고 헤어진 그 날부터 묻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전부 대답을 물을 순 없겠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불러놔 봤자 질리지도 않고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는 이 히스테릭한 남자의 어디가 마음에 든다고, 부탁하는 대로 들어준 건진 몰라도… 이게 부정할 수 없는 진실한 마음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료 상도 말해줘. 죽었으니까 체면 같은 건 아무래도 됐잖아. 비웃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을 테니까, 말해.”
“우리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료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대로 아무 수확 없이 깨어나는 걸까, 생각하던 차에 하루카의 앞으로 불쑥 손이 내밀어졌다. 그 손은 하루카를 붙잡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는 그대로 집 밖을 나와 밤하늘을 날았다. 동화처럼 날고 있는 건지, 아주 빠르게 달리고 있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익숙한 길을 지나 모르는 길이 나오고, 모르는 길을 지나다보면 또 익숙한 길이 나왔다. 잠시 정신이 멍해지더니, 이끌던 손이 사라졌다.
이내 도착한 곳에는 어째서인지 토우마도, 미나미도, 토라오도 있었다. 미나미는 기타를 쥐고 있었고, 토우마와 토라오도 각자의 자리에 앉아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잘 보니 레드 힐 페스티벌이 끝나고 돌아오던 길의 덴마크 거리였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루카가 혼란스럽게 눈을 굴리고 있자 그들은 눈신호를 주고받고, 미나미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낯선 도입부였으나 들어본 적 없는 느낌은 아니었다. 어떤 곡의 어레인지 버전 같았다.
노래가 시작되자 갑자기 물을 가득 먹은 종이처럼 소리가 퍼졌다. 멤버들의 입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뭐라 말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토우마와 토라오는 한 손을 높이 들고, 버스킹을 구경하러 모인 관객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호응을 유도하고 있었다. ……하루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고, 그 손은 무의식중에 마이크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토우마에 이어 미나미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점점 소리가 선명해졌다. 하루카는 직감적으로 지금 자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굳게 닫혀 있던 입이 저절로 열리고, 분명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Just maybe 과거와 지금이 겹쳐지고 있어 줄곧…
료 상 바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루카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은 밝은지 오래였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 하루카의 머리에는 그 날, 칠흑같이 어둡던 밤이 떠올랐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생각했던 시절, 구석까지 달려와 버린 우리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결의를 태우던 날. 처음으로 환희에 차고 동시에 완전히 추락했던 그 날… 그는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말했다. 왔으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을까?
이제 막 쌀쌀해지려 하는 일본의 날씨와 덴마크는 비교할 게 못 됐다. 오랜만에 와도 춥구만. 중얼거리면서도 토우마는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에 반해 토라오는 이런 길거리 공연은 처음인지 이게 맞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율을 확인한 미나미가 준비 됐다는 사인을 보냈다. 버스킹이 시작되려 한다는 걸 눈치 채자 행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들었다.
카메라를 든 시로가 녹화 버튼을 누르고 화면 너머로 네 사람을 응시했다. 길거리의 악단, 그야말로 브레멘 음악대였다.
하루카가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어색해하던 토라오도 금세 적응해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토우마는 덕분에 색다른 공연을 할 수 있음에 들떠 보였다. 미나미는 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꼬박 어레인지 버전을 간편하게 손봐 왔다. 고생스러운 작업이었을 텐데도,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며 웃어보였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가볍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제는 어두운 밤을 단 한명의 손님을 위해 밝힐 시간이었다.

